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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

용서를 하고 산다는 것은...(용서하기)

by 최사빠 2024.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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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미워하는 일, 미워하는(혹은 굳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없다고 한다면, 정말 존경스러운 사람입니다. 
혹자는 그러한 사람을 성인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살아가다 보면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그런 일 저런 일 다 있는 거야라고 말하지만, 막상 그 일은 당하거나 겪어본 사람들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내가 다쳐보거나 아파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어떤 질병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간혹 쉽게 넘겨짚으며 말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각적으로 내 안에 느껴지는 감정이 크지 않기 때문에 외부 기관인 입이나 몸짓으로 표현하는데 동작이 클 수 없습니다.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지만, 그것에 우리는 서운해하고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매우 세밀한 감정까지를 어루만지는 일들입니다. 솔직히 우리가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서로의 감정을 논하지는 않고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오늘 다뤄볼 것은, 용서할 수 있을까?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답입니다.
 
성경을 인용하자면, 예수께서는 오른빰을 맞거든 왼뺨도 대어 주라고 합니다. 와~ 이게 가능합니까? 저는 절대로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타인을 이렇게까지 이해하고 나의 생각은 하나도 관철시킴이 없이 타인의 생각만을 이해하고 그것을 오롯이 받아들이라는 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하자면 길어지기 때문에 간단히 말씀드리면, 객관적인 고통을 받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트라우마? 그런 감정이 있을 때가 가끔 생깁니다. 그 일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 생각하면 끔찍할 정도이지만, 용서? 수년이 흘러도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비단, 제가 경험한 그런 용서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어주고 계시는 당신 또한 엄청나고 수많은 고통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모두 용서가 되던가요? 아, 시간이 많이 흐르면 희미해지는 약간의 보상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뚜렷한 잔상만 남고 악한 감정으로 몸에 박혀 있어서 상기될 때마다 더 큰 고통이 되지 않으면 다행일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의 크기와 관계없이 용서를 말하고 싶습니다. 저 또한 이 말을 빌어 용기를 내어 용서를 해 봅니다.
 
나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이 처음에는 가해자이지만, 그로 인해 그의 삶이 망가지거나 그의 고통이 발생됐다면,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가해자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그럴 수도 있으니 그저 용서를 택하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어떤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살해하고 교도소에 간 그 살인범을 자신의 양자로 삼은 어떤 목사님?을 보며, 대단하다고 느낀 적 있습니다. 용서는 결국 사랑을 낳습니다. 
 
서로에게 피해는 주지 않지만 삭막해져 가는 지금의 시기에 따뜻한 웃음으로 서로를 대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오늘의 이 순간까지 나를 괴롭히는 어떤 사건이 있습니까? 잊히기엔 너무도 힘든 고통이 있습니까?
용서. 어렵지만 용기를 내어 보십시오. 한 번은 정말 어렵지만, 그래! 해보자! 어차피 나 혼자만 힘들었는데 내가 먼저 용서해 보자!라고 생각하면 어느 순간 평안한 마음이 당신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그것이면 만족하지 않습니까? 평안한 마음이 있다는 것은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설렘의 시작입니다. 
 
용서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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